수묵, 겨울
화선지 위에 듣는 당신의 한 줄기 먹선
한 무리 큰절이 낮은 산맥을 이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둥글게 몸을 만다 슬픔이 발묵하는 때 산수 깊이 그늘이 젖는 계절 가라앉아라, 가라앉아라
당신은 굽이굽이 휜 골짜기 물소리 부서진다 피돌기 멈춘 병실에서 나는 당신의 이마를 문지른다 바람이 둥글게 말리면 소용돌이로 맺히는지 지문은 당신의 등고선, 넘나드는 사람들이 몸을 주무르고 바람이 머무르고 입가에 귀를 대면 까맣게 닫힌 목구멍 안쪽으로 숨이 고치를 튼다 목젖이 두터운 먹빛을 때린다 호흡기 위로 하얀 나비가 피었다 진다 묵은 숨이 훨훨 떠오를까 눈 감아봐 소나무 가지로 흰 눈이 쌓였어 산자락은 구름을 닮아가지
해 넘어가며 그늘 빚는 산 나는 허리 꺾인 한 그루 붓질이다 갈필로 휘저은 나무 사이로 눈이 내린다 산기슭이 거친 먹으로 마른다
- 김준현 저
- 2013 신춘문예 당선시집ㅣ문학세계사ㅣ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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