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ㅣ나는 왜 너와 관계 맺는가 인문

 주체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과 다른 것들을 배제해야 한다. 내가 나일 수 있으려면 내가 다른 존재들과 '다르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주체는 다른 것들이 나와 다르다는 전제 위에서만 안전하게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 자아동일성은 자기와의 다른 타자를 식별해내고 이 구별을 유지하는 전략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나는 그와 달라야 한다. 그래서 주체는 자아의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와 다른 '타자'를 만들어내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이렇게 식별된 타자들은 단순히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달라서 열등한 존재들이었다. 문제는 열등한 데서 그치지 않고 나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데 있다. 물론 이 위협은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아가 동일성을 유지하고 자기 안에 머물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낸 조작된 위협들이다. 이성이 조작적으로 타자를 구성할 때 새벽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몸'이다.

 자아동일성을 유지하려는 이성적 주체가 타자를 지배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할 때 첫 번째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몸이었다. 유럽 문화에서 인간성의 실현은 영원한 세계에 참여함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이며 물질적 영역인 몸은 언제나 이 과정을 방해할 수 있는 잠재적 적으로 간주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여성은 인격의 발현이 아니라 그저 생리적 작용과 욕구로만 이루어진 몸덩어리에 불과했다. 유색 인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으로 이성과 유색 인종은 괴물과 동일한 반열에서 배치되어 이성을 가진 '정상'을 위협하는 비정상의 역할을 떠맡아왔다.

 이러한 정치학 아래 여성은 언제나 이성을 위협하는 악이었고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같은 비서구 세계 역시 이성의 타자로서 영원한 악이었다.

 이런 바탕에는 근대에는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비서구 세계의 이른바 유색 인종들을 지도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차별과 배제는 특정한 집단이 정체성 유지를 위해 고안된 논리에 다름 아니다. 강력한 집단이 자신을 유지하고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존재들을 식별하고 배제함으로써 차별하는 과정이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맹자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맹자는 사람 마음속에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이런 마음을 측은지심이라고 부른다. 측은지심은 남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공감하는 마음이다. (...) 맹자는 모든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과 책임을 느끼는 능력이 곧 선한 본성이라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맹자는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바로 이 능력 때문에 도덕적인 실천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으로서의 측은지심이 있지만 그것이 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그 자체로 선한 것은 아니다. 측은지심은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맹자는 측은지심이 곧 도덕적 가치로서의 인仁이 아니라 인의 실마리라고 말한 것이다.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현대 철학자들은 근대철학이 쌓아 올린 주체의 환성에 도전해서 이른바 '타자'를 복권시키려는 전략을 구상해 왔다. (...) 기존의 서양 철학에서 주체로서의 자아는 세계를 자기중심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자아는 끝없이 확장되지만 타자는 주체의 의해 포섭되거나 파악되는 대상화된 존재에 불과하다. (...) 개인의 자아를 발견한 소크라테스 이래로 철학은 자기만족에, 그리고 이기주의에 근거한다고 본다. 레비나스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한다. 동일자를 중시하는 전통은 부정할 수 없는 타인의 존재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레비나스의 윤리학은 구체적이고 즉물적이며 고유한 타자의 '얼굴'을 제시함으로써 타자를 그저 추상적인고 익명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방식을 넘어서고자 한다. '모든 인류가 형제'라고 말할 때의 공허감이나 무책임이 '네 얼굴 속 너의 고통이 내 앞에 나타난다'라고 말할 때의 절절한 공감과 책임으로 바뀐다. 얼굴로 등장한 타자는 이 사회 어딘가에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먼 거리의 존재가 아니라 내가 직접 연대해야 하는 실질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 김선희 저
-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ㅣ예담ㅣ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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