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근대의 상징물이라면 시계를 떠올린다. 근대에 등장한 수많은 기계 중에서 시계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자동성' 때문이다. 시계는 스스로 움직인다. 시계는 근대인이 꿈꾸었던 세계의 모습, 즉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합리적인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본래 시간은 온전히 자연을 창조한 신의 것이었다. 시간은 신이 세계를 창조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시간은 곧 변화를 의하는데, 신은 결코 변화를 겪지 않는 완전하고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에게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신이 창조한 피조물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조물들에게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 개념은 서구적인 근대화가 전 세계를 거대한 힘으로 묶고 통제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13년 6월 1일의 에펠탑은 유럽인의 시간 개념을 전 세계에 선언하고 따르게 만든 유럽 중심적 시간이 정식으로 출발한 곳이었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 현대인은 언제나 시간을 '계획"해야 한다. 계획은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전제 아래 시간과 해야 할 일을 맞추어 배정하고 배열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시간에 쫓긴다. 그러나 손목시계도 벽걸이 달력도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온갖 효율적 도구를 다 갖추었는데도 왜 현대인들은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것일까?
사람들이 시간의 계획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시간의 기준이 달려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호 벤저민 프랭크린이 '시간은 돈'이라고 선언한 이래, 돈은 시간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점점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갔다. 시간의 절약과 경제적 이윤은 동의어가 되었고 그 결과 놀라운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간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젊음과 젊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훈장처럼 여기며 이를 상품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젊은 사람들에게 특권과 경쟁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그 특권을 누리고 그 특권 안에 있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며, 이 특권을 벗어난 사람들을 무시하려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에너지 삼아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순환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움이 아니라 반복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움을 산출하지 못한다고 해서 늙어감을 결여와 박탈로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 본래 시간은 온전히 자연을 창조한 신의 것이었다. 시간은 신이 세계를 창조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시간은 곧 변화를 의하는데, 신은 결코 변화를 겪지 않는 완전하고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에게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신이 창조한 피조물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조물들에게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 개념은 서구적인 근대화가 전 세계를 거대한 힘으로 묶고 통제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13년 6월 1일의 에펠탑은 유럽인의 시간 개념을 전 세계에 선언하고 따르게 만든 유럽 중심적 시간이 정식으로 출발한 곳이었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 현대인은 언제나 시간을 '계획"해야 한다. 계획은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전제 아래 시간과 해야 할 일을 맞추어 배정하고 배열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시간에 쫓긴다. 그러나 손목시계도 벽걸이 달력도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온갖 효율적 도구를 다 갖추었는데도 왜 현대인들은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것일까?
사람들이 시간의 계획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시간의 기준이 달려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호 벤저민 프랭크린이 '시간은 돈'이라고 선언한 이래, 돈은 시간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점점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갔다. 시간의 절약과 경제적 이윤은 동의어가 되었고 그 결과 놀라운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간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젊음과 젊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훈장처럼 여기며 이를 상품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젊은 사람들에게 특권과 경쟁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그 특권을 누리고 그 특권 안에 있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며, 이 특권을 벗어난 사람들을 무시하려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에너지 삼아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순환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움이 아니라 반복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움을 산출하지 못한다고 해서 늙어감을 결여와 박탈로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 김선희 저
-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ㅣ예담ㅣ2012년 1월
-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ㅣ예담ㅣ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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