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ㅣ나는 왜 자유롭지 못한가 인문

 우리는 자유란 언제나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러나 자유가 언제나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철학, 과학뿐 아니라 거의 모든 학문에서 아버지로 대접받는 아리스토텔레스지만 그가 '자유주의'의 아버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자유에서 방종을 읽었고 그래서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역시 부정적으로 보았다. 아무런 속박이 없는 상태가 자유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자유가 결국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방종에 귀착될 것이라고 경계했던 것이다. 그리스 철학의 한 영역에서 자유란 우주의 질서가 보여주는 필연 밖의 불완전한 우연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으며 어떤 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불안을 사르트르는 인간의 근본 조건으로서의 자유라고 불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롭고 그 자유는 무한하다. 이 무한성의 근거는 우연에 있다. 모든 것은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사라질 뿐이다. 그 어떤 것도 존재해야 할 필연성을 가질 수 없다. 그 어떤 존재자도 어떠해야 한다는 규정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무한히 자유롭다. 물론 이 말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 어떤 것도 필연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유는 애초부터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출발한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은 선택의 결과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감정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슬픔이 밖에서 닥쳐온 어쩔 수 없는 마음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감정을 외부에서 닥쳐오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내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슬픈 것은 어떤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내도록 이루어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책임도 나의 몫이다. 나의 감정은 세계에 대한 나의 반응이며, 이해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의식이 지향하고 그에 따른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자기를 속인다. 한 가지 도피 방법은 자기가 마치 하나의 사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자유와 불안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에게 의식이 있기 때문이니 스스로 의식이 없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면 선택과 책임을 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도피의 과정을 사르트르는 자기기만이라고 불렀다. 자기기만이란 자유에 따른 선택과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의식을 부정하고 스스로 사물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기만은 책임과 선택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방어다. 한마디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바로 자기기만인 것이다. 자기기만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자신을 동일시하며 하나의 사물로 만들어서 스스로를 안전지대에 두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자기기만에 빠지게 되면 자신이 실천하고 결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사물처럼 만들어서 문제를 회피하고자 한다.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 아니라 형벌과도 같은 것이다. 무엇도 나를 보장할 수 없는데 나는 끝없이 스스로를 결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 자유롭다는 진정한 의미다. 그러니 자유는 인간에게 전쟁과 같은 상황이다. 그 어떤 필연성도 보장받지 못한 존재로서 인간은 끝없이 미래로 자신을 밀어내고 던져야 한다. 인간은 미래로 자신을 던지면서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가야 한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사르트르가 상정하는 자유는 사실상 개인에게 대단히 고통스럽다.

 밀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타인의 행복을 탈취하려고 시도하거나, 행복을 성취하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선을 추구하는 자유다. 각 개인은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건강의 적절한 보호자여야 한다.

 <장자>에는 현실 세계 속에서 자기 손으로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 이 사람은 한마디로 못났다. 지리소는 턱이 배꼽에 닿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고, 오장이 머리보다 높은 데 있으며 넓적다리가 옆구리에 와 있는, 이른바 곱사등이였다. 남들 눈에 그의 삶은 불편하고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지리소는 등이 굽어 있어서 빨래나 바느질에 적합했기 때문에 그를 불러다 일을 시키는 이들이 많았다. 무능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그는 열 식구를 먹여 살릴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이 능력은 그가 유용해서가 아니라 무용한 데서 나온다. 그는 전쟁이 나도 징집되지 않았고 나라의 공사에도 부역으로 끌려가지 않았다. 그는 세상의 관점에서 무용했기 때문에 열 명이나 되는 가족들을 충실히 부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자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에게도 쓰이지 않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이 기인들은 세계에 억지로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하지 않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틀어 갇히지도 않는다. 이들의 삶은 본래 흐르도록 되어 있는 삶의 방향과 지향을 향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욕망에 묶이지 않는다.

 장자는 자유가 일상을 벗어나고 초탈할 능력이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 장기 본성을 왜곡하지 않고 사는 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하나의 자유를 사기 위해 다른 자유를 잃지 않는 것, 자신의 자유를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막지 않는 것, 그리고 경직 없이 변화를 따라 흐르며 무슨 일에도 담담할 수 있는 평온의 힘.


- 김선희 저
-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ㅣ예담ㅣ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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