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는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공개 처형과 같은 잔인한 형벌 제도를 감옥이 대체하는 과정을 논증한다. 사형을 공개함으로써 대중적인 공포심을 자극해 군중을 통제하려 했던 절대군주제 시대를 지나 계몽사상과 합리적 개혁주의가 등장하자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보복에서 징계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이때 새로운 징벌의 방법이 고안되었는데 그것이 범죄자의 몸이 아니라 정신을 처벌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범죄자들의 '도덕적 개선'을 목표로 하는 감옥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감옥은 직접적 체벌을 피하는 박애주의적인 징벌 제도가 아니라 이전 시대보다 더욱 강력한 사회 통제를 위해 고안된 권력의 장치였다. 공개 처형 대신 감옥에서 범죄자를 징계하게 된 것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 폭력보다 감금과 감시가 더 효과적인 처벌법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신에 대한 처벌은 처벌의 강도를 줄이면서도 더욱 보편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범죄자를 징벌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감옥이 '감시'를 통해 범죄자들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감시는 처벌을 몸이 아닌 정신에 새기는 역할을 했다.
원형감옥에서 작동하는 감시와 규율은 개인을 옮아매는 권력으로, 직접적으로 신체에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생체권력'의 성격을 띠고 있다. (...) 감시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순종하는 법, 복종하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감시와 처벌을 통해 규율이 사회 전체에, 그리고 개인의 내면에 뿌리내리면 규율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통제의 수단이 된다. 감시를 느끼고 처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규율에 몸을 맞추고 온순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감시는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얼굴 없는 시선의 역할을 한다. 얼굴 없는 시선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순종하는 몸, 유순한 신체가 되어 스스로 규율을 따르게 된다. 감시와 처벌은 규율을 자동기계처럼 내 안에서 작동하게 만들었다.
21세기의 원형감옥은 인터넷과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대중매체들이다. 대중매체는 매일 미美에 대한 기준과 규율의 리스트를 갱신한다. 어떤 얼굴이 아름다운지, 어떤 몸이 더 멋진 몸인지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 연예인들은 이 리스트를 시연해보이는 표본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인터넷은 아름다움의 기준과 그 기준에 도달하는 규율을 만들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쁜 얼굴'과 '나쁜 몸'을 골라내서 '저질'이나 '불량'으로 처벌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몸이라는 하드웨어를 바꾸는 데 성공하는 사람은 생각과 생활습관, 심저이 인간관계나 직장까지 자신의 소프트웨어 전체를 바꾸는 모험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개조의 효과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 효과가 자신을 부정한 결과에서 나온 것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기를 부정하는 기술이 단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제도화되다시피 해서 모든 사람들을 정형화하고 규격화한다는 것이다. 정형화하고 규격화하는 강력한 힘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이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징벌하는 힘을 갖고 때문에 문제가 된다. 권력으로서의 대중문화가 무서운 것은 모든 사람을 일체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옥은 직접적 체벌을 피하는 박애주의적인 징벌 제도가 아니라 이전 시대보다 더욱 강력한 사회 통제를 위해 고안된 권력의 장치였다. 공개 처형 대신 감옥에서 범죄자를 징계하게 된 것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 폭력보다 감금과 감시가 더 효과적인 처벌법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신에 대한 처벌은 처벌의 강도를 줄이면서도 더욱 보편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범죄자를 징벌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감옥이 '감시'를 통해 범죄자들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감시는 처벌을 몸이 아닌 정신에 새기는 역할을 했다.
원형감옥에서 작동하는 감시와 규율은 개인을 옮아매는 권력으로, 직접적으로 신체에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생체권력'의 성격을 띠고 있다. (...) 감시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순종하는 법, 복종하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감시와 처벌을 통해 규율이 사회 전체에, 그리고 개인의 내면에 뿌리내리면 규율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통제의 수단이 된다. 감시를 느끼고 처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규율에 몸을 맞추고 온순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감시는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얼굴 없는 시선의 역할을 한다. 얼굴 없는 시선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순종하는 몸, 유순한 신체가 되어 스스로 규율을 따르게 된다. 감시와 처벌은 규율을 자동기계처럼 내 안에서 작동하게 만들었다.
21세기의 원형감옥은 인터넷과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대중매체들이다. 대중매체는 매일 미美에 대한 기준과 규율의 리스트를 갱신한다. 어떤 얼굴이 아름다운지, 어떤 몸이 더 멋진 몸인지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 연예인들은 이 리스트를 시연해보이는 표본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인터넷은 아름다움의 기준과 그 기준에 도달하는 규율을 만들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쁜 얼굴'과 '나쁜 몸'을 골라내서 '저질'이나 '불량'으로 처벌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몸이라는 하드웨어를 바꾸는 데 성공하는 사람은 생각과 생활습관, 심저이 인간관계나 직장까지 자신의 소프트웨어 전체를 바꾸는 모험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개조의 효과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 효과가 자신을 부정한 결과에서 나온 것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기를 부정하는 기술이 단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제도화되다시피 해서 모든 사람들을 정형화하고 규격화한다는 것이다. 정형화하고 규격화하는 강력한 힘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이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징벌하는 힘을 갖고 때문에 문제가 된다. 권력으로서의 대중문화가 무서운 것은 모든 사람을 일체화하기 때문이다.
- 김선희 저
-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ㅣ예담ㅣ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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